[영어 모의항소심 재판대회] 판사를 움직이는 건 큰소리 아닌 논리

	원고측 서예린·홍효선(왼쪽부터)양이 피고 측을 상대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명헌 기자]

1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SC금융지주빌딩 10층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2회 청소년 영어 모의항소심 재판대회’ 최종 결승전. 참가한 100여 명의 중·고생 앞에서 재판 판사이자 대회 심판 역을 맡은 김&장법률사무소와 SC제일은행 소속 변호사 12명이 갑론을박을 벌인다. 드디어 두 팀이 결정됐다.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인 홍효선·서예린(청심국제고2) 팀이 Petitioner(원고), 고지연·서유지(청심국제중3) 팀이 Respondent(피고) 역할을 맡게 됐다.

“미국 워싱턴 한 고교에서 고교생 말콤이 입고 등교한 티셔츠가 논쟁에 휩싸였다. ‘전쟁 반대’라는 표어와 함께, 현직 대통령의 머리에 올가미를 씌운 그림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며 말콤에게 티셔츠 착용을 금지했다. 이에 말콤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두 팀이 벌일 법정 공방의 주제다. 말콤 변호인 홍·서 팀은 자유민주국가의 헌법을 강조했다. “자유국가에선 표현의 자유가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견 표현일 뿐, 학교가 이를 억압·통제하는 건 비교육적 행태나 다름없다.”

학교 측 변호를 맡은 후배 고·서 팀도 물러서지 않았다. “학교는 모든 학생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1~2명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면 학교 규정에 따라 말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따라서 말콤은 학생으로서 학교 규칙을 먼저 준수해야 한다.” 양 팀은 평소보다 더 강하게 공격의 날을 세웠다.

얼핏 보면 ‘누구 목소리가 더 세냐’를 가리는 말싸움 같다. 그러나 판사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한판 승부다. 논리적인 웅변과 객관적 입증자료(판례)를 제시해야 한다. 홍양은 “판사들의 반응을 읽으며 논리를 전개하는 노련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예린양은 “판사와 대화하듯 얘기해야 하는데, 예선에서는 1~2명이던 판사가 결선에선 11명이나 배석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최대 난제는 허를 찌르는 판사들의 날선 질문. “티셔츠가 면학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는지 판단할 기준이 있나?” “개인의 자유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뜻인가? 그 근거는?” “만일 이 사건이 인터넷에 퍼진다면 교내 사건으로 한정해 학교 규칙만 적용할 수 있을까?” 사안별로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고지연양은 “약점을 꼬집을 땐 긴장과 위압감에 정신이 혼미해진다”며 “좋은 대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서유지양은 “적절한 대목에서 안성맞춤 판례를 제시해 우리의 입을 꽁꽁 묶었다”며 상대팀의 노련함을 칭찬했다.

재판대회 1등 챔피언은 고·서 팀이 차지했다. 판사 역을 맡은 김&장법률사무소 박은영 변호사는 “어떤 논리와 사례가 더 우수한지, 이를 어떻게 조화시켜 주장하는지를 평가했다”며 “적절한 답변으로 판사를 설득한 주장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수상자들은 모두 특목고 출신에 유학파거나 국내외 유사 토론대회 수상 경력자들이다. 학교에서 원어민 토론교사의 지도까지 받는다. 한 참가 학생은 “국내와 유학 출신자, 유사 대회 수상자와 비수상자 등으로 나눠 일반고 학생들의 참여와 수상 기회가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박정식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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